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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단씩 천천히, 꿈속을 걷는 배우 강지혜

최종 수정일: 2019년 1월 14일


키다리 아저씨가 무사히 끝나고, 얼마 전에 콘서트도 하셨어요. 그 후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일단 레슨을 계속 받고 있고요. 수영을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수영이 폐활량과 체력, 근력도 동시에 키울 수 있는 제일 좋은 운동이라고 하더라고요.


가족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근래에 조카가 태어났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웃음) 조카가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태어나지 않았고, 진통도 40시간 이상을 겪었어요. 가족들이 모두 가족분만실에 들어가서 언니와 함께 있었죠. 내내 언니랑 함께 있어 줄 수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었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첫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은 너무 감동적이었고요. 이제 막 태어났는데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웃음)


얼마전엔 안나 카레니나 캐스팅 발표가 있었죠.

네! 러시아 제작진에게 제 영상을 보냈었는데 오랫동안 소식이 없더라구요. 설마 되겠어? 라는 생각으로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웃음) 너무 행복해요.


최근에 공연한 수현재 10분 극장 '날 달래는 꿈'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음, 사극이에요. 저는 대제학의 딸이었고요. 이 작품의 배경에는, 좋은 미래로 가고 싶지만 방향성이 다른 두 세력의 다툼이 있어요. 결국, 반대파의 계략으로 제 집은 불에 타버리게 되고 저는 가족을 모두 잃어버리죠. 간신히 살아서 도망친 제가 신분을 속이고 기생으로 살아가면서 복수를 꿈꾸게 돼요. 사랑, 역사적 배경, 또 정치적인 것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전부 표현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웠기 때문에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던 극이에요.


사랑스럽고 여린 이미지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기생이라는 역할도 잘 소화하셨어요.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웃음)



지금까지 하셨던 작품에 대해 조금 들어보고 싶어요. 우선 2012년에 하셨던 '번지점프를 하다'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데뷔작이에요. 처음이라 너무 특별했던 작품이고, 공연도 아닌 첫 연습 날부터 너무 떨려서 토할 것 같더라고요. (웃음) 저는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었고 공연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고. 너무 무섭고 떨리는 바람에 너무 일찍 가버려서 아무도 안 오고 심지어 문도 안 열려 있는데 떨면서 기다렸어요. (웃음) 함께 한 배우들과 다들 사이가 좋았어요. (문)성일이 오빠가 프로그램북에 말풍선으로 하나씩 다 손편지를 써서 줬는데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죠.


혹시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나요?

네.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 (전)미도 언니가 연습실에서 한 장면을 연기하는데, 정말 그곳은 아무런 소품도 배경도 없는 연습실인데 그곳이 무대 위의 한 공간으로 보였어요. 주위의 풍경이 전부 그려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이게 공기가 달라진다는 거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너무 인상적이었죠. 그것 말고는, 제가 막내니까 다들 절 놀린다고 엄한 얼굴로 "지혜야." 하고 부르면서 장난치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2012년에서 2013년까지는 완득이에 참여하셨죠.

네. 홍익대 아트센터 개관작이었어요. 공사가 덜 끝나는 바람에 한겨울인데도 히터가 안 나와서 정말 고생했던 기억이 나요. 저는 학생도 했고, 베트남 소녀도 했고 여러 역할을 했는데요. 거기서 '교생' 역할을 앙상블 세 명이 한 달씩 번갈아 가며 하기로 했어요. 제 차례가 돌아와서 첫 번째 공연을 하게 됐는데, 제가 연습실에서만 연습하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하려니까 다른 배우들과 주고받는 반응이나 관객석의 분위기도 너무 많이 달라져서 그 장면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거예요. 웃음이 터져야 하는 장면인데 객석이 너무 조용했던 거죠. 다행히 그 후에 몇 번 공연하면서 점점 익숙해져서 객석 반응도 좋아지긴 했지만, 제가 어리숙한 탓에 교생 역에선 물러나게 됐어요. 좀 더 잘했다면, 하는 후회가 계속 들었죠.


2013년에 사슴의 발이라는 작품을 하셨는데요.

이건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한 종교극이었어요. 제 역할은 '엄살'이었고요. 성종완 연출님이 작사, 작곡, 극작에 연출까지 전부 다 하셨던 작품이죠. 주인공 이름은 '겁쟁이'였지만 행복한 엔딩으로 끝났어요. 아, 그다음이 하이스쿨 뮤지컬이죠?


네, 맞아요. 2013년에 하셨던 하이스쿨 뮤지컬.

이것도 기억에 남아요. 저는 캐시의 커버였는데, 당연히 무대에는 오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혼자서 열심히 연습했어요. 대사도 전부 외웠고요. 공식적으로 리허설도 한 번 한 적이 없는데, 원래 켈시 역인 배우 분께서 낮 공연에서 갑자기 다리를 다쳤어요. 저는 한 시간 반 전에 무대에 서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요. 그래서 혼자 연습해두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죠. 만약에 제가 '어차피 안 설 건데.' 라는 생각으로 소홀히 했다면 그때 어떻게 되었을지 정말 아찔해요. 이때 제가 한 공연을 보고 (강)동호 오빠, (양)주인 음악 감독님이 "지혜는 잘할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했고, 잊지 못할 경험이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너무 무서웠거든요. (웃음) 정말 혼자서만 계속 연습했는데 갑자기 무대에 올라가라고 하시니까, 패닉이었죠. 정말 긴장했고 무서웠어요.


계속해서 2013년에 날아라 박씨라는 작품을 하셨어요.

아, 제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역할이라는 걸 받았어요. 배우와 스태프의 이야기라서 스스로 공감 가는 부분이 정말 많았고요. 같이 연기한 배우들도 다들 공감하면서, 즐겁게 연기했어요.


공연 내용이 굉장히 현실적이었어요.

네, 맞아요. 스태프들의 이야기도 있어서 제가 그분들을 이해하고,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극 중에 스태프들한테 화를 내거나 좋지 못한 대우를 하는 부분도 나오거든요. 그래서 스태프분들을 더 배려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또 '장미'는 좀처럼 발전하지 못하는, 머물러 있는 배우였어요. 그 역할을 보면서 많이 공감했죠. 기회를 얻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 스스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공연이에요. 꿈에 대해, 열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요.


2014년으로 넘어가서, 들풀이라는 작품이에요.

너무 좋았어요. 외국,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정서고 우리 이야기잖아요. 너무나 가슴이 뜨거워지고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정말 뜨겁게 했던 공연이에요. 기억에 남는 게, 리허설할 때였어요. 농민들이 전투하다 모두 죽게 되거든요. 저는 열두 살의 소년 역할이었는데 아버지를 부르다 총에 맞아 죽어요. 주인공 배우가 죽어있는 농민들에게 와서 가자, 일어나, 라고 말하며 저를 업거든요. 그 장면에서 살짝 눈을 떴는데 다른 배우들이 모두 죽어서 쓰러져 있는 게 보였어요. 그 순간 그 공간이 진짜 그 옛날의,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그 날의 현실처럼 느껴진 거예요. 저도 역할이 아니라 그날 죽은 소년이고, 저기 누워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와 함께했던 사람들이고. 그래서 전 죽어 있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눈물이 나서 도저히 주체가 안 되더라고요. 막 엉엉 울었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우리의 일이고 하니 아직까지도 우리 안에 그 한과 정서가 살아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너무나 많은 걸 배운 공연이고, 아직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져요.


2015년에는 런웨이 비트를 하셨네요.

네, 제 첫 주연작이에요! 의상이 타이트하고 예쁜 교복이었는데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들었어요. 첫 주인공인 만큼 특별하고 고마운 작품이었죠. 주연으로 극을 이끌어간다는 게 뭔지 경험할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작품이었어요. 작품 자체도 너무 좋았고요. 신나게 공연했던 것 같아요.


2016년 젊음의 행진 이야기도 해볼까요.

이건 정말. (웃음) 몸이 죽을 듯이 힘들었어요. 죽을 듯이 힘들게 해야 관객분들은 더 신나시니까요. 숨이 안 쉬어지고, 옷 갈아입으면서 다른 배우들과 서로 대화도 못 할 만큼 다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배우들끼리는 서로 너무 친해졌죠. 아직까지도 서로 연락하면서 지내는데, 딱 하루라도 좋으니까 이 멤버 그대로 한 번만 공연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요.


다음은 굉장히 길게 공연하셨던 빨래. 2016년에서 2017년에 걸쳐서 하셨죠.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오자, 그런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오디션에 갔어요. 이때는 사실 제가 금전적으로 힘들었죠. 또 젊음의 행진에서 너무 즐거웠지만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게, 나도 무대에서 대사를 해보고 싶다. 그런 순간이 올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나영이라는 역을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간절하게 준비했고, 절박하게 임했죠. 넉넉하지 않고, 쓸쓸한 시기였어요.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라는 가사가 제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방바닥을 닦으면서 나영이가 '내 꿈이 닳아버렸다, 잊어버렸다, 내 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이 대사를 할 때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이 저와 너무 비슷하게 느껴졌고요. 저 역시 이제 포기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배우가 너무 하고 싶은데. 그렇게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나영이를 하게 되니, 정말 너무 행복하고 기뻤죠. (웃음) 무대에서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9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연기로 울어본 적이 없어요. 항상 진심으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가장 최근작이었던 키다리 아저씨는 어땠나요?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제게는 은인 같은 작품이죠. 극이 따뜻해서 그런 걸까요? 스태프, 배우, 관객분들까지 너무나 따뜻하시고, 좋았어요. 딱 한 가지 힘들었던 건 제가 너무 떨리고 부담스럽고, 내가 정말 이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압박감과 두려움이었죠. 하지만 제르비스 역할의 오빠들, 연출님, 저보다 더 저를 믿어주는 분들이 계셔서 해낼 수 있었어요. 힘이 났고요. 또 제루샤는 아주 강인하고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한 인물이에요. 제가 두려움을 가지고 임하면 제루샤를 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약한 마음은 털어버리고 최선을 다해 연기했어요. 극 중에서 제루샤가 성장한 만큼 저 자신도 내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에요.


이중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해준 작품이 있나요?

키다리 아저씨요. 저는 스스로가 굉장히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노래도 옛날 노래만 좋아하고요. 학생 때 제일 처음 산 앨범이 김현식 베스트 앨범이었고. (웃음) 술도 못 마시고, 재미있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루샤라는 인물이 순수하고 맑기 때문인지, 제가 뭘 하면 관객분들이 웃어주시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전 슬프고, 안타깝고, 그런 이미지만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게서 이렇게 밝은 느낌이 전달되는구나, 하는 걸 느꼈죠. 또 제루샤는 극중에서 점점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잖아요. 내가 이렇게 다양한 면을 표현할 수 있구나, 내게 한 가지 면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랑스러운 면도 보여드릴 수 있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전 에너지가 안쪽으로 모이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키다리 아저씨를 하면서 그 에너지를 바깥으로 표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제 데뷔 5년 차인데요. 그 동안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나요?

책임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처음 데뷔했을 땐 책임감이라는 걸 느낄 새도 없이 그저 역할을 소화하는 게 급했으니까요. 빨래, 키다리 아저씨를 하면서 관객분들을 만났을 때 위로를 받았다, 힘이 났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런 말씀들을 들으며 앞으로도 온 마음을 다해서, 지금 이 마음을 잃지 않고, 타성에 젖지 않고, 익숙해지지 않고 온전하게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무대에 서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하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제가 점점 무언가를 잃어가거나 놓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된다면 소중한 시간을 들여 와주시는 관객분께 너무나 죄송한 일이 될 것 같아요. 그런 책임감이 생겼어요.


그럼 다음 5년을 생각해서, 5년 뒤 배우 강지혜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지혜야, 잘 견뎌내고 있니? (웃음) 네가 받은 많은 사랑과 축복들을 너 혼자만 누리고 있는 건 아니니? 정신 차리고. 네 것이 아니란다. 네가 받은 그런 좋은 것들을 혼자 가지고 있지 말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이기적인 삶이 아닌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웃음) 항상 이런 생각을 해요. 기부도 많이 하고 싶고, 어린 청소년들도 도와주고 싶고. 앞으로도 이런 마음을 잃지 않고, 제가 가진 생각을 지키면서 배우로 살아가고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란 저를 매개로 해서 무언가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보여드려야 하는 직업.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내면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올바른 내면이 있어야 표현에 진실성이 생긴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계속 가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역시 안나 카레니나를 열심히 준비하는 거겠죠.


기다려주시는 팬분들께 한 마디 해주세요.

아직 공식 연습에 들어가기 전이라 제 안에 정확한 그림은 없지만, 워낙 원작이 훌륭한 작품이에요. 한 가지 주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까요. 사랑뿐 아니라 결혼, 종교, 도덕성, 사람들의 시선, 자기 자신의 가치관, 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가 있어요. 두 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최대한 그것이 표현되기를 바라고요. 그 안에서 저는 제가 맡은 역할, 제 키티의 성장을 여러분께 잘 전달하고 싶어요. 열심히 준비할 테니까 많이 기대해주시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요새 날씨가 추워지니까 건강 조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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