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셔의 여신님이나 아랑가의 아랑 등 '환상 속의 여인'과 같은 역할을 자주 맡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전 그런 성격이 아닌데! <사의 찬미>의 심덕이가 제 성격에 가까웠죠. <미드나잇>의 우먼도요! 그것도 저예요 그냥. (웃음) 처음에 뮤지컬을 하게 됐을 때, 계속 이런 캐릭터를 맡다 보니까 의문이 생겼어요. ‘왜? 난 예쁘고, 참하고, 지고지순한 이런 연기를 계속 해야할까?’ 그러다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관객들이 배우로서 보는 나의 이미지가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연기하는 말투나 걸음걸이 등을 그 이미지에 맞춰서 바꾸게 됐어요. 사실 대학교 다닐 땐 활동적인 캐릭터들을 더 많이 맡았는데, 어쩌면 그때 저도 모르게 ‘나중에 프로 무대에 서게 됐을 때 왠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런 연기를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밖에 나가면 하지 못할 연기를 실컷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역할을 하다 보면 한정적이고 수동적인 면이 많아서 배우로서 답답한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는 답답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답답한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여성 캐릭터들이 주로 남자 캐릭터가 가야 하는 지향점, 방향성에 도움을 주는 서브 역할을 주로 맡았잖아요. 그래서 서브로서 목적을 제대로 해내는 것을 더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1~2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했죠. 그러면서 저도 텍스트를 받아봤을 때 혹은 연습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어요. <사의 찬미>의 심덕이를 만났을 땐, 정말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하다가 책상을 너무 쳐서 뼈가 나간 적도 있어요. 그렇게 성질나서 책상을 내리치고 때려 부수는 심덕이는 없었대요. (웃음) 그때는 ‘내가 너무 내 성격대로 하나..?’ 싶어서 조금씩 조절을 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미드나잇>의 우먼을 만났을 때는… (웃음) 중간에 화가 나서 소리치는 장면이 있는데, 제가 최고로 화났을 때 정말 그렇게 소리를 지르거든요. 제가 사자후를 날려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무대에서 보였던 적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연기했던 내가 아니라 진짜 ‘나’를 보여주는 거니까. 사실 사람은 자기 모습을 온전히 내보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특히 무대에서는 캐릭터마다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데, 오히려 그 부분에서 나를 보여준다는 것이 굉장히 도박처럼 느껴지더라구요. 그렇게 걱정이 많았는데,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제가 무대에서 칼을 높이 들고 목을 자르려고 하고 있는데, 객석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거예요. 그걸 처음 발견했을 때 정말 놀랐어요. 물론 <미드나잇>이 블랙코미디 작품이긴 하지만, 그 장면에서 그렇게 관객분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을 줄은 몰랐어요. 다들 즐겁게 봐주시는구나 싶었죠. 물론 그 뒤로는 몸을 살짝 틀어서 안 보고 연기하긴 했지만… (웃음) 그 다음부터는 저를 내보이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덜 했던 것 같아요. ‘아, 그래. 이게 난데 뭐 어쩌겠어. 10년 동안 한 번도 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이렇게도 해 봐야지!’
캐릭터를 만들어갈 때, 동료 배우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나요.
저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한 작품에서 배우들의 바톤터치가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 ‘내가 해야 할 몫’, ‘상대가 해야 할 몫’, ‘상대를 위해 내가 해줘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공연의 균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해야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연출님과도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그래야지 제 캐릭터가 혼자 오버 페이스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평소에 문득문득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날씨와 관련이 있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눈이 오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가 생각나요. <아랑가>의 눈과는 다르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조명으로 공간감을 만들어서 눈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내가 보고 있는 것처럼 감각적인 최면을 걸어서 그런 것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잖아요. 공간이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장되니까 눈을 보면 나타샤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보름달을 보면, 달이 떠오르는 작품이 먼저 생각나는 것처럼요.

<아랑가>와 <미드나잇> 등 다양한 작품에서 남다른 춤 선을 보여줬는데, 평소에도 춤추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다. 원래부터 춤을 좋아하셨는지.
전 춤추는 거 좋아하는데 춤추러 갈 데가 없네요. (웃음) 전 모든 춤을 다 춰요. 인스타 보다가 누가 춤추는 영상을 보면 따라 추기도 해요. 흥이 많죠. (웃음) 제가 무용 전공이라고 알고 계신 분들도 많던데, 전 무용 전공한 적이 없어요. 원래 운동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예고를 가게 됐죠. 춤은 중학교 때부터 췄어요. 라틴, 스트릿 댄스, 발레, 현대무용, 재즈 다 했어요. 제가 한 번 빠지면, 만족할 때까지 배우는 스타일이어서 춤이란 춤은 다 배웠죠. 마지막으로 대학교 가서 한국무용을 배우고 나니 모든 춤선이 한국무용으로 바뀌더라구요. (웃음) 그래서 제가 한국무용을 전공했다고 알고 계신 분들도 있는데, 대학교 때 배운 거예요. 그러다 보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그렇고, <아랑가>도 그렇고 안무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무대를 준비하고,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보여주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을 텐데 그중에 가장 좋은 부분이 있다면?
저는 작품을 시작할 때, 작은 공책을 하나 사요. 캐릭터 노트 같은 건데, 그 사람의 일대기를 쓰는 걸 좋아해요. 태어난 배경, 어디서 누굴 만나서, 무엇을 겪었는지 쭉 적어요. 사실 저는 굉장히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이 하나 던져질 때, 작품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돌이 던져지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이 노트에 담기는 것 같아요. 텍스트는 이 사람이 겪게 될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인 거고, 저는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정말 좋아해요. 그 과정이 재밌겠다 싶으면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미드나잇>의 우먼 같은 경우는 그런 걸 만들어가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말이 있는지?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죠. 사람을 만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실재하지 않는 텍스트의 인물들을 만나는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많이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은 ‘강해져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때는 그 말이 잘 안 와닿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난 그래도 잘 버텨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잘 버틴 것 같아요. 모든 배우들이 그랬겠지만 한번 안정적이게 된다고 해서 그 상태가 쭉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사실 작년에 배우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연을 쉬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에게 ‘배우를 그만두려면 20대 때 그만 둬야 한다. 서른이 넘어가면 잊을 수가 없다.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고, 그 어떠한 것도 갈증을 채우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요. 제가 쉬고 있는 동안에 누가 보여준 텍스트를 읽게 된 적이 있었는데, 다시 심장이 뛰더라구요. 그때 아직은 내가 떠날 때가 아니라는 걸 느끼고 ‘다시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배우가 되길 잘했다 싶은 순간을 꼽아본다면 언제일까요.
전 배우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은 항상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에 다시 돌아왔을 때. 지금까지는 끊임없이 작품을 해왔던 것에 대해서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사실을 몸소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다시 돌아와서 무대를 하다 보니까 좀 달라졌어요. 지금은 공연이 좋든 좋지 않든 그냥 좋은 것 같아요.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니까요. 예전에는 무대에서 실수를 하면, 그날은 잠을 못 잘 정도로 계속해서 생각이 났어요. 제가 완벽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자꾸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실수를 하면 웃음이 먼저 나요. ‘그래, 나도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왜 그때 그 실수를 했는지 생각해보고 원인을 찾아서 다음엔 그러지 말자고 결심하게 됐어요. 예전엔 저 스스로에게 너무 화를 많이 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스스로를 다독여요. 내가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도전해보지 못한 장르나 배역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전하지 못한 장르가 뭐가 있지? 다 해본 것 같아서. (웃음) 저는 액션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요. 다음번에 그런 장르 작품이 온다면 꼭 하고 싶어요. 아, 한 번은 필석 오빠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본인은 <아랑가>가 아예 도미가 죽은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대요. 아랑이 궁에 잠입을 해서 도림과 개로를 다 죽이는 스토리가 진행되는 거죠. (웃음) 중간중간 도미가 회상으로 등장하고… 그렇게 한다면 전 잘할 자신 있어요! 칼을 내던지고, 표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고. 저 <사의 찬미> 때는 심덕이가 총 쏠 때, 총 쏘는 자세가 제대로라는 칭찬을 들은 적도 있어요!

평소 무대 밖에서는 무슨 일을 하며 지내나요?
잎새랑 보내요. 제 말만 들어서 남에게 못 보여 주겠어요. 일 안 할 때는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긴 하는데, 밖에 있을 때는 잘 못 봐서 잎새 집에 제가 놀러 가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 집은 잎새 집이에요. (웃음) 웬만하면 강아지랑 있어 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집순이여서 잘 안 나가거든요. 그런데 원래 집순이들 특징이 막상 누가 부르면 귀찮아하면서 잘 나가요. 나가서 잘 놀죠. 그러다가도 좀 있으면 ‘잎새가 안 온다고 난리 칠 텐데..’하는 생각도 들고.
연기 이외에 가장 좋아하는 취미나 분야가 있다면?
저는 요리로 실험하는 걸 좋아해요. 보통 들어가는 재료가 아닌 것들을 넣는 거죠. 예를 들어, 카레에 단호박이나 고구마를 넣는다거나… 저번엔 비빔면에 딸기를 넣어 먹었는데, 인스타에 올렸더니 다들 놀라시더라구요. 그냥 딸기가 있길래 아무렇지 않게 비빔면에 넣은 건데! 냉장고에 있는 걸 다 넣어요. 전 그게 실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집 꾸미는 것도 좋아해요. 봄 되면 항상 가구도 바꾸고, 커튼도 바꾸고, 가구를 조립해요. 집에 망치랑 드릴도 다 있어요. 페인트칠도 직접 한 적이 있는데, 쉽사리 생각하면 안 되겠더라구요.
가끔 새벽에 인스타 라이브에서 책을 읽어준다고 들었어요.
제가 쉬는 동안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제가 평소에는 글이라고는 대본밖에 안 읽는 사람이었는데 놀 거 다 놀고, 할 거 다 하다 보니까 이제 할 게 책 읽는 것밖에 없더라구요. 그런데 읽다 보니까 너무 좋았어요. 책 속에서 만난 좋은 구절들을 함께 보고 싶은데, 그걸 인스타에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자니 조금 민망하고, 뭐가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인스타 라이브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거죠. 나처럼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이걸 듣고 잠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구요. 읽다 보면 나도 잠들 수 있을 것 같고, 이 시간에 잠들지 못한 사람들이 들었으면 해서 새벽에 했던 거예요.
그럼 추천할만한 책이나 좋아하시는 책은?
얼마전까지는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 아워>를 읽었어요. 아직 두 권 중에 한 권밖에 못 읽었는데, 시간이 날 때 봐야 할 것 같아서 잠시 미뤄뒀죠. 요즘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다시 보고 있어요. 이 책은 주기적으로 일이 년에 한 번씩 다시 보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처음 읽게 됐는데, 그땐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 이렇게 심심하고 재미없는 책이 있다니! 그런데 어쩌다가 영화를 대학교 때 보게 되었는데 내가 읽었던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느낌이 다른 거예요. 그래서 그때 다시 읽었어요. 그런데 느낌이 너무 많이 다르더라구요. 이 책을 나중에 다시 읽으면 또 느낌이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며칠 전부터 다시 읽고 있어요.
요즘 1인 컨텐츠가 늘어나고 있는데, 유튜브를 시작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사실 개인 채널이 있는데, 여행 기록 용이거든요. 여행하다 보니까 사진보다 영상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더라구요. 여행을 가야 하는데, 올해 열일을 하겠다고 다짐을 해서 못 가고 있네요. 지금도 사실 몸이 근질근질해요. (웃음) 사실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라이브에서 책을 읽어주는 걸 보고 이걸 유튜브에서 해보면 좋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는데, 그건 엄청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걸 읽어주면서 서로에게 굉장히 많은 위안을 얻었는데, 이게 일이 되어버리면 내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냥 인스타 라이브 방송 정도로도 만족하고 있어요.
배우 '최연우'에게 떠올렸으면 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가끔 ‘오래오래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공연 보면서 관객들이 ‘아, 저 배우가 무대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준다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관객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버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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